대한민국 구석구석 <25> 이다도시의 경주 토요일 밤 천년 고도는 '빛의 도시' |  | | 불을 밝힌 임해전지의 전각이 어둠 내린 안압지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 | 나는 17년 전 처음 경주에 가봤다. 프랑스에서 공부를 마치고 어학연수를 위해 한국을 찾았던 1991년이다. 외국인의 눈에 당시의 경주는 경이로웠다. 신라 천년의 역사가 생생하게 보존된 경주는 현재와 과거가 혼동될 정도였다.
그 뒤에도 친구나 가족과 종종 방문했다. 갈 때마다 문화재와 명소를 구경한 뒤 저녁엔 보문호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온천에서 피로를 푸는 일정을 보냈다.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론 경주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이는 다른 곳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기도 했다.
|  | | 경주 세계문화엑스포공원의 랜드마크인 경주타워에서 펼쳐지는 문라이트 레이저 쇼. | | 3년 만에 경주에 갔다. 그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우리 가족은 경주 재발견의 첫 일정을 대릉원과 가까운 신라체험장에서 시작했다. 신라체험장은 외국인 관광객이 찾기 쉽지 않은 평범한 건물의 지하에 있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의 친절하고 전문적인 설명이 곁들여져 신라의 문화와 역사를 편히 체험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전통 연과 연등을 만들어 보았다. 아이들에게는 책에서나 보던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해지기 직전 우리는 거대한 무덤인 천마총의 내부를 둘러보고 이어 천체를 관측했다는 첨성대를 찾았다. 어둠이 짙어지자 월성 위로 달이 떠올랐다. 노래방 애창곡인 '신라의 달밤'이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촛불로 연등을 밝히고 신라 귀족의 연회 장소인 임해전지를 찾았다. 단청이 멋스러운 3개의 누각은 여러 색깔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검은 빛의 안압지는 누각을 거울처럼 또렷하게 반사하고 있었다.
같은 역사 도시지만 파리에서는 임해전지처럼 호젓한 장소를 찾기 쉽지 않다. 현대식 건물이 어둠에 묻혀 사라진 임해전지 일대는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신라시대로 돌아간 듯했다. 임해전지를 떠날 때쯤 많은 사람이 가을밤의 음악회를 감상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멋진 풍경이었다.
임해전지가 경주를 대표하는 과거의 빛이라면, 경주 세계문화엑스포공원의 문라이트 레이저 쇼는 미래를 상징하는 빛이다. 레이저 쇼가 진행되는 경주타워는 외관이 유리로 이루어진 현대적 건축물로 옛 황룡사 9층목탑 모양이 실제 크기로 음각돼 있다. 고려 때 몽고의 침략으로 불태워진 황룡사 9층목탑이 현대적 건물로 되살아났다고나 할까. 3년 전엔 드넓은 공터에서 공사가 한창이더니 그곳에 경주타워가 들어선 것이다.
여러분이 만약 토요일 저녁 경주에 있다면 엑스포공원으로 가 레이저 쇼를 감상하라고 권하고 싶다. 아마 이런 광경은 처음일 것이다. 웅장한 음향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신라의 역사와 전통을 나타낸 레이저 빔이 경주타워와 밤하늘을 수놓는 장면은 장관 중의 장관이다. 난 그런 광경을 난생 처음 보았다. 타워 주변의 장치에서 수많은 비누방울이 날아오르고 거기에 레이저 빔이 더해져 쇼는 절정을 이뤘다. 우리는 그 황홀한 광경에 흠뻑 빠져들었다. 20분간의 매직! 경주는 밤에 화려하게 되살아났다.
엑스포공원 맞은편에 위치한 신라밀레니엄파크의 '라궁'도 환상적이었다. 그동안 경주에서 민박집과 고급 호텔까지 여러 형태의 숙소를 경험했지만 한옥 호텔 '라궁'의 운치는 나의 상상력을 넘어섰다. 16채의 한옥으로 이루어진 5성급 호텔 객실은 완전히 독립적이면서도 현대적 시설로 불편함이 없도록 꾸며졌다. 작은 마당에는 온천욕을 할 수 있는 미니 풀도 갖춰졌다. 옛 신라 스타일로 꾸며진 침대에 누우니 여왕이 된 듯했다. 신라인이 온돌에서 자지 않고 침대를 이용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온돌 대신 3개의 다리를 가진 화로를 두고 침대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이튿날 아침 신라밀레니엄파크 체험마을과 공연장을 찾았다. 입구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과거부터 현재까지 볼 수 있게끔 꾸몄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현재로 여행을 한다고나 할까. 관람객은 스펙터클한 공연을 통해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파크는 적어도 반나절은 걸려야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먹고 쉬고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췄다. 단, 신라의 방식으로!
경이와 신비로 가득한 경주의 1박2일이었다. 과거의 빛과 미래의 빛이 공존하는 신라의 달밤은 경주를 새롭게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TIP
|  | | ■경주의 밤은 대릉원과 첨성대 등의 경관 조명과 가로등이 켜지면서 시작된다. 대릉원에서 첨성대와 계림·월성을 거쳐 임해전지에 이르는 구간이 경주 야간여행의 대표 코스. 임해전지의 야외 특설무대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7시30분부터 공연이 열린다. 경주시 문화관광과 054-779-6061.
■세계문화엑스포공원은 지난해 경주 세계문화엑스포가 열린 새로운 야간 명소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경주타워(82m)를 스크린 삼아 펼쳐지는 '문라이트 레이저 쇼'가 경주의 밤하늘을 환상의 빛으로 물들인다.
3D 입체 영화 '토우대장 차차'는 신라의 도제 기마 인물상을 소재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신라 문화의 아이콘 토우가 '차차'라는 이름의 무사로 의인화돼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신비롭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보여준다. 054-748-3011.
■신라문화원에서 운영하는 체험장에서는 종이 금관 만들기, 탁본(첨성대·성덕대왕신종 등) 체험, 왕비 복장 입어보기 체험 등 신라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신라문화원(www.silla.or.kr)이 마련한 달빛·별빛 신라 역사기행은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적 여행상품이다. 낮에는 문화유적을 답사하고 밤에는 탑돌이 등 '신라의 달밤'에 흠뻑 젖어드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054-777-1950.
■신라밀레니엄파크는 역사문화 체험 마을로 한옥형 특급호텔 라궁(羅宮)에서의 숙박 체험이 인상적이다. 신라 궁궐을 의미하는 라궁은 회랑으로 연결된 16채의 독립 가옥으로 객실마다 온천탕과 누마루·거실·온돌방·양식 침실 등을 갖추고 있다. 파크에서는 화랑의 무예훈련을 재현한 공연이 펼쳐진다. 칠보공방·유리공방으로 이루어진 공예 체험마을도 운영한다. 054-778-2000.
|  | | 이다도시는=1969년 프랑스 노르망디 출생. 르아브르 대학 및 대학원 졸업. 한국어 어학당 연수 중 한국인 서창수씨와 만나 93년 결혼. 탁월한 한국어 실력으로 방송 활동. 97년 한국 국적 취득. 프랑스 여성상 수상(2005년). 프랑스 보르도 지방 와인 홍보대사. 법무부·문화체육관광부·경찰청 홍보대사. 『한국, 수다로 풀다』『이다도시의 행복 공감』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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