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26일 월요일

흥을 깨는 사람들

제목이 좀 재미있을런지...?
이런내용의 글들은 여기저기서 단편적으로 많이들 보셨을것 같은데요...

누군가 고마우신 분께서 한곳에 모아두셔서 제가 퍼왔습니다...

지금은 당연시 여기는 여러 생각들이 발명당시에는 어찌도 이렇게 황당한 취급을 받았는지 정말 웃기기만 합니다... 기존의 고정관념과 새로운 생각사이에는 이렇게 어찌해볼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장벽이 있는가 봅니다...

Thanks... C.W. :)



흥을 깨는 사람들

"이 전화기는 단점이 너무 많아 통신 수단으로 고려할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아무 소용도 없는 물건이다."
- 벨이 개발한 전화에 대한 웨스턴 유니온의 메모(1876년)

"발상도 흥미진진하고 구성도 좋다. 하지만 C학점이상 받으려면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 익일 배송 서비스(Overnight delivery service)를 연구한 프레드 스미스의 논문에 대한 한 예일대학 경영학과 교수의 답변. 스미스는 후에 페덱스를 설립했다.

"재고할 가치가 없으니 우리에게 굳이 신발 제조법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
- 대형 신발 제조 업체가 나이키 런닝 슈즈의 걸작이라고 여겨지는 '와플(Waffle)" 개발자이자 나이키의 공동 창업자인 빌 바워만에게 한 말.

"그래서 저희는 아타리(Atari) 사를 찾아가 '귀사의 일부 부품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정말 멋진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저희에게 자금을 대주실 수 있습니까? 아니면 저희가 이 제품 개발 노하우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이 제품이 세상에 나오는 것뿐입니다. 월급만 준다면 귀사를 위해 일해 보겠습니다.'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그 친구들, '그렇게는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할 수 없이 휴렛패커드를 찾아 갔더니, '당신들은 필요 없어. 아직 대학도 졸업 못했잖아'라고 거들떠 보지도 않더라고요."
- 워즈니악(Wozniak)과 공동 개발한 PC로 아타리와 휴렛패커드의 관심을 끌어 보려고 했던 것에 대해 스티브 잡스가 한 말. 잡스와 워즈니악은 후에 공동으로 애플컴퓨터 사를 창업했다.

"'그것들을 가맹점화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의 실험 대상이 되겠습니다.'라고 제가 간곡하게 말했지만 그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서 경영 철학을 볼 수 없었어요.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자 버드와 저는 독립했습니다."
- 샘 월트는 1962년 할인 소매 아이디어에 관심이 있어 벤 플랭클린 체인을 사려고 노력했던 때를 상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월튼은 후에 월마트를 창업했다.

"배우가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 워너 브라더스의 워너가 최초의 유성 영화 제작을 거부하며 한말(1927년).

"음향이나 기타 치는 소리나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 비틀즈 음반 취입을 거부하며, 데카 레코드(1962년).

1884년, 존 헨리 패터슨은 금전 등록기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동업하는 친구에게 6,500달러를 빌려 달라고 했다거 조롱만 당했다. 패터슨은 후에 NCR(National Cash Register, 최초의 금전 등록기 개발 회사)을 창업했다.

"의학에 컴퓨터를 이용하려 하다니 정말 정신이 나간 친구군. 나는 컴퓨터에 자신도 없고 그것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소."
- 영국의 의학 교수가 CT 스캐너에 대해 존 알프레드 파웰에게 한 말.

"석유를 캔디고? 땅을 파서 석유를 캐내? 그런 엉터리 같은 생각을 하다니!"
- 채굴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1859년 석유 시추를 하려는 에드윈 드레이크에게 한 말. 그레이크는 후에 최초의 석유 시추 개발업자가 되었다.

"비행기는 재미있는 장난감일 뿐 군사적인 가치는 전혀 없다."
-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서부 전선 최일선에서, 페르디앙 포슈(프랑스 육군원수, 1911년).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지속적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텔레비전은 결코 대중들 사이로 파고들지 못할 것이다."
- 하버드 대학교수, 체스터 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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