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4일 화요일

영화로 보는 알랭들롱 일대기

최근 개봉한 <아스테릭스: 미션 올림픽 게임>에서 뜻밖의 배우를 만났다. 1998년 '프랑스 영화의 죽음'을 선언하며 돌연 은퇴했던 명배우, 알랭 들롱. 트렌치 코트 깃을 세우며 안개 속을 걷던 고독한 청년은 지금 꼬장꼬장한 노인이 됐지만, 그의 아름다움은 전설이 되어 영원히 남아 있다. 1957년 데뷔부터 현재까지, 알랭 들롱이 걸어온 52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기사 | 신민경(영화 칼럼니스트), 구성 | 네이버영화

프랑스 명배우, 알랭 들롱

01. <여자가 개입될 때 Quand la Femme S'en Mele>_1957

point: 새로운 청춘스타의 등장
뒷골목과 전쟁터에서 10대 시절을 보낸 알랭 들롱에게, 기회는 22살에 찾아왔다. 친구들을 따라 칸영화제를 기웃거렸다가, 할리우드의 저명한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의 눈에 띄었던 것. 섹시한 야생마 같았던 들롱은, 제임스 딘의 계보를 이을 만한 존재였다. 하지만 들롱은 파리에서 이브 알레그레 감독을 만난 뒤 미국행을 포기했고, 대신 알레그레의 영화 <여자가 개입될 때>로 데뷔했다. 파리의 어느 나이트클럽을 배경으로 한 이 범죄 드라마에서 들롱이 맡은 역할은 살인 의뢰를 받은 청년 '조'. 그의 연기는 거칠고 신경질적이었지만, 이 영화는 한 명배우의 탄생을 알렸다.

02. <아름답지만 침묵하기를 Sois Belle et Tais-Toi>_1958

point: 라이벌이자 동료, 장 폴 벨몽도
18살 소년이 소년원에서 탈출해 갱단에 연루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이 영화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두 명배우가 처음으로 만났기 때문이다. 알랭 들롱은 데뷔한 지 얼마 안됐을 때였고, 그보다 두 살 위인 장 폴 벨몽도 역시 출세작 <네멋대로 해라>(59)에 출연하기 전이었다. 두 배우는 이후에도 여섯 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하면서, 라이벌이자 영화 동료로서의 친분을 쌓아나갔다. 들롱이 우수에 젖은 눈빛의 대명사라면, 벨몽도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미소가 전매 특허인 배우였다.

03. <크리스틴 Christine>_1958

point: 세기의 커플 탄생
첫 주연작 <크리스틴>에서 알랭 들롱은 상대역이었던 로미 슈나이더와 불같은 사랑에 빠졌다. 로미 슈나이더는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로, 15살 때부터 일찌감치 연기의 길에 들어선 스타. <크리스틴>은 영화 자체보다 세기의 로맨스 덕분에 더 유명해졌고, 이후 두 사람은 1964년까지 약혼 생활을 유지했다. 이후 순탄하지 못한 결혼 생활과 알코올중독, 아들의 죽음 등으로 로미 슈나이더의 삶은 꽤 굴곡이 많았다. 슈나이더는 1982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는데, 알랭 들롱은 그녀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추모의 글을 남겼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당신을 위해 몇 마디의 독일어를 배웠습니다. (독일어로) 사랑해요, 내 사랑."

04.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_1960

point: 천사처럼 부드럽게, 악마처럼 차갑게
모호한 섹슈얼리티, 섬세한 카리스마, 선과 악의 경계에 있는 눈빛 등 알랭 들롱의 트레이드마크를 만들어준 출세작. 르네 클레망 감독은 그의 아름다움을 카메라 안에 집대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듯한데,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여러 편의 영화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며 친밀한 관계를 이어나갔다(동성 연인 사이라는 소문마저 돌았을 정도였다). 리메이크 영화 <리플리>(99)에서 새롭게 태어난 '리플리' 맷 데이먼도 묘한 매력이 있었지만, 알랭 들롱이 창조한 '절대적 아름다움'은 매력을 넘어 이미 전설이 되었다.

05. <로코와 그의 형제들 Rocco i Suoi Frateli>_1960

point: 노동자 계급의 초상
이탈리아 북부로 이주한 시칠리아 가족의 삶을 그린 영화. 알랭 들롱은 <태양은 가득히>의 다면적인 캐릭터와는 완전히 다르게, 선한 노동자 계급으로 출연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들롱은 이후 루키노 비스콘티의 '시칠리아 3부작' 중 하나인 <표범 Il Gattopardo>(63)에도 출연해 몰락해 가는 대지주 역할을 맡았다. 알랭 들롱의 정치적 성향이 극우파인 걸 감안할 때, 공산주의자였던 비스콘티의 영화에 출연한 것이 조금 아이러니이기도.

06. <일식 L'eclisse>_1962

point: 허무주의에 빠진 도시인
알랭 들롱의 폭넓은 필모그래피를 증명해주는 작품. 제목 '일식'이 상징하는 바대로, 알랭 들롱은 이 영화에서 빛을 잃어버린 도시인의 고독과 허무주의를 드러낸다. 들롱이 연기하는 주식 중계인 '피에로'는 무기력한 도시 속에서 로맨스를 지속하지 못하는데, 당시 들롱의 실제 연애사와도 흡사해 관심을 모았다. 약혼녀 로미 슈나이더를 옆에 두고 들롱은 모델 겸 배우였던 니코와 사랑에 빠졌으나, 열정이 없는 일시적인 사랑에 그치고 말았다.

07. <지하실의 멜로디 Melodie en Sous-Sol>_1963

point: 갱스터 시대의 서막
들롱은 <아라비아의 로렌스>(62)에서 오마 샤리프가 맡은 '알리' 역에 거론된 적이 있다. 하지만 스케줄 문제와 매번 갈색 콘택트렌즈를 껴야 하는 고통 때문에 결국 포기했고, 대신 선택한 작품이 <지하실의 멜로디>다. 이 영화로 갱스터 장르의 포문을 열었으니, 알랭 들롱으로서는 큰 전환점이 된 셈. 게다가 프랑스의 국민배우 장 가뱅과 함께 파트너로 출연하는 영광도 누릴 수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신경질적인 갱 캐릭터를 창조한 작품.

08. <사무라이 Le Samourai>_1967

point: 장 피에르 멜빌을 만나다
트렌치 코트 깃을 세우고 한 남자가 유유히 걸어간다. 그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장전되어 있지 않은 총을 상대에게 겨눈다. 누구도 믿지 않는 예민하고 냉혹한 킬러,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운 남자, 제프 코스텔로. '갱스터 장르'의 연금술사 장 피에르 멜빌의 창작열이 절정에 달했던 1960년대 중반, 그의 곁에 알랭 들롱이 있었다. 들롱은 이 영화를 통해 냉혈한의 이미지로 완벽하게 변신했는데, '얼음처럼 차가운 천사'(Ice Cold Angel)란 별명도 이 시기에 얻은 것이다.

09. <수영장 La Piscine>_1969

point: 위험한 에로티시즘
실제 연인 사이였던 알랭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의 매혹적인 조화를 볼 수 있는 영화. 여기서 두 사람은 휴양지의 한 빌라에 놀러온 커플로 등장하는데, 여자의 옛 남자친구가 틴에이저 딸을 데리고 나타나면서 팽팽한 사각관계가 형성된다. 수영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음모, 재난으로 치닫는 관계가 긴장감 넘치게 묘사됐다. 구릿빛 피부를 드러내며 에로틱한 판타지를 자극하는 알랭 들롱의 매력도 거부할 수 없다.

10. <볼사리노 Borsalino>_1970

point: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진 스캔들
<수영장>으로 시작된 자크 드레이 감독과의 인연은 계속된다. 한편 이 영화가 공개되기 2년 전, 알랭 들롱에게 치명타를 입힌 사건이 있었다. 들롱의 보디가드가 피살되고, 들롱의 친구이자 갱인 프랑수아 마르칸토니가 살인 혐의로 기소된 것. 들롱 역시 경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범죄 연루설이 돌았으나, 이는 곧 들롱의 극중 갱스터 캐릭터에 리얼리티를 불어넣으면서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다주는 결과를 낳았다. <볼사리노>에서 1930년대 마르세이유 갱스터로 출연한 들롱이 리얼하게 보였다면, 이 사건의 여파가 어느 정도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갱으로 함께 출연한 장 폴 벨몽도와의 파트너십도 인상적.

11. <암흑가의 두 사람 Deux Hommes dans la Vie>_1973

point: 단두대 위의 사나이
갱스터 장르 속에서 의연하게, 멋지게 죽어갔던 알랭 들롱.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조금 다르다. 알랭 들롱이 연기한 '지노'는 은행강도 혐의로 12년 동안의 복역을 마친 사나이. 하지만 범죄의 유혹과 사회적 편견이 결국 그를 사형수로 만들어버린다. 이 영화의 압권은 들롱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 죽기 직전, 절망과 공포로 가득한 들롱의 표정은 소름 끼칠 정도다. 알랭 들롱의 영화 중 가장 비극적인 장면.

12. <미스터 클라인 Mr. Klein>_1976

point: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사이
1960~70년대 알랭 들롱을 지배한 이미지는 단연 범죄영화 속의 '선악이 모호한 존재'였다. 갱스터 장르 안에서 들롱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건 사실이지만, 그는 다른 스타일의 영화에도 도전했다. 유독 애착이 가는 영화로 꼽는 <미스터 클라인>이 대표적.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들롱은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술 거래상으로 출연한다. 조셉 로지 감독과 알랭 들롱의 재능이 시너지를 낸 영화.

13. <우리들의 이야기 Notre Histoire>_1984

point: 생애 첫 세자르상
알코올중독자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한다는 이야기. 나탈리 베이와 함께 중년의 강박적이면서도 예측불허인 로맨스를 감각적으로 묘사했다. 이 영화로 알랭 들롱은 생애 첫 세자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들롱의 마음은 이미 영화계에서 멀어져 있었다고. 그전까지 연기, 연출, 제작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사업까지 전방위적인 활동을 했던 알랭 들롱.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점에 오른 순간 그는 영화보다 개인의 삶에 더 무게중심을 싣기 시작했다.

14. <누벨바그 Nouvelle Vague>_1990

point: 남은 정열을 불태우다
동시대를 살아온 프랑스 최고의 감독과 최고의 배우가 너무 늦게 만났다. 하지만 두 거장은 늦게 만난 만큼 성숙하게 각자의 정열을 불태웠다. 모든 대사가 철학적, 문학적 인용으로 구성된 <누벨바그>에서, 고다르는 영화가 상업적으로 전락한 시대에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한다. 알랭 들롱은 로제 르녹스, 리샤르 르녹스의 1인 2역을 맡아, 고다르의 극단적인 실험과 혁신에 동참했다. 들롱의 날렵한 아름다움은 이미 퇴색해버렸지만, 스산한 철학자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15. <절반의 기회 Une Chance sur Deux>_1998

point: 명배우의 은퇴 선언
부쩍 훈훈해진 알랭 들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바네사 파라디가 자신의 친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스무 살 아가씨 '알리스'로, 알랭 들롱과 장 폴 벨몽도가 알리스의 아버지 후보에 오른 노신사로 호흡을 맞췄다. 젊은 시절 범죄 영화에서 나란히 활약했던 두 배우의 변화가 조금 서글프기도.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알랭 들롱은 "프랑스 영화는 죽었다"고 선언하며 돌연 은퇴했다. 데뷔 이후 좀처럼 할리우드 영화와 타협하지 않았던 알랭 들롱을 떠올린다면, 충분히 그럴 듯한 명분이다. 이 영화 이후 <아스테릭스: 미션 올림픽 게임>으로 복귀하기 전까지, 알랭 들롱은 몇몇 TV 시리즈에서나 볼 수 있었다.

16. <아스테릭스: 미션 올림픽 게임 Asterix aux Jeux Olympiques>_2008

point: 의외의 복귀작
10년 만에 영화에 출연한 알랭 들롱의 복귀작 치곤 좀 의외다. 그의 귀환을 기다렸던 사람이라면 노인의 지혜가 번뜩이는 범죄 드라마를 기대했을 법도. 하지만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그가 선택한 캐릭터는 '자뻑' 기질 충만한 황제 시저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출연을 결심했다. 이 정도면 복귀작으로 손색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는 알랭 들롱. 그의 취향이 급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메이드 인 프랑스' 마크가 분명히 찍힌 영화라는 게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 듯하다. 차기작으로 거론되고 있는 조니 토 감독의 <레드 서클 The Red Circle>은 장 피에르 멜빌과 함께한 <암흑가의 세 사람>을 리메이크한 영화. 주윤발, 리암 니슨과 함께 출연할 예정이다. 비록 과거의 날렵한 턱선은 사라졌지만, 위대한 노배우의 부활을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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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movie.naver.com/movie/mzine/cstory.nhn?nid=586&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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