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들은 펜에 민감하다. 사시2차처럼 주관식 시험을 볼 때면 하루 종일 답안을 작성한다. 필기감이 시험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고시생들은 펜을 고르는 데도 신중하다. 그리고 한번 고른 펜은 웬만해선 바꾸지 않는다. 고시생들이 선호하는 펜도 따로 있어 고시촌 인근 서점 문구코너에서는 매월 인기 펜 순위를 매긴다. "'경제학은 사라사, 법은 에너겔'이란 말이 있어요. 도표나 그래프가 많은 경제학은 깔끔하게 써지는 사라사 펜을 선호하고 글씨를 많이 써야 하는 사시나 행시는 부드럽게 써지는 에너겔을 많이 쓰기 때문이죠." 사시 준비 1년 차인 김 씨(22)의 얘기다. 사라사, 에너겔 모두 일본 제품이다. 일제 펜 위주인 고시촌에 최근 국산 펜 하나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주인공은 모닝글로리의 '마하펜'. 신림동 고시촌의 서인숙 광장서적 문구 담당자는 "최근 마하펜 5통(1통에 36자루입)이 2~3일 만에 모두 나갔다. 고시생들은 펜에 병적으로 집착하기 때문에 국산 제품을 잘 안 쓰는 편인데 마하펜이 이례적으로 잘 팔리고 있다"고 전했다. 변용덕 모닝글로리 구로영업소 과장은 "고시촌에 들여놓은 마하펜이 거의 다 팔리다 보니 점주들이 오히려 전화해 물건을 달라고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본사도 제품 생산에 여념이 없다. 지난 3월 5일 시중에 첫선을 보인 마하펜은 출시 일주일 만에 15만자루가 모두 판매됐고 4월 중순까지 30만자루 이상 팔렸다. 회사는 올해 250만개 판매를 예상한다. 마하펜 덕분에 올해 예상 매출도 지난해보다 13% 높은 430억원으로 잡았다. 허상일 모닝글로리 사장은 "마하펜 생산과정이 정밀해 더 생산하고 싶어도 하루 2만자루밖에 생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주일 만에 15만자루 팔려 출시 초기부터 마하펜이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 측은 부드러운 필기감과 경제성을 꼽는다. 마하펜은 0.4㎜ 수성펜이다. 물로 잉크를 녹이는 수성펜은 유성펜보다 잉크가 부드럽게 나온다. 단, 점도가 약해 잉크가 흐른다. 물이다 보니 잘 번지기도 한다. 고시생이 즐겨 쓰는 펜이 대부분 유성펜인 것도 이 때문이다. 마하펜은 이런 단점을 극복했다. 최정헌 모닝글로리 디자인연구소 팀장은 "0.4㎜ 굵기의 파이프팁을 펜 끝에 달아 일정한 굵기와 부드러운 필기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잉크가 새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년여 동안 5억원의 연구비를 투자했다"고 말했다. 긴 수명과 저렴한 가격도 장점. 마하펜은 펜 몸체에 잉크를 담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래서 잉크 카트리지가 빨대 형태로 내장된 제품보다 잉크를 더 많이 담을 수 있다. 필거리도 자연히 늘어 기존 펜보다 5배나 긴 5000m에 이른다. 그에 반해 가격은 1000원에 불과하다. 경쟁 제품의 가격이 1500~2500원 선인 것을 감안하면 가격도 한 수 위다. 많이 쓰는 고시생들은 평균 3일에 한 개 꼴로 펜을 소모하는데 마하펜은 일주일을 써도 너끈하다. 가격이 저렴한 데다 품질도 일본 제품에 뒤지지 않다 보니 고시생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이 돌았다. 현재 국내 필기류시장은 약 4조원으로 추산되며 중저가 펜은 중국산, 고가 펜은 일본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틈새에 마하펜이 얼마나 분전할지 시장 안팎에서 크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허상일 사장은 "마하펜 색상을 8~10색 정도로 늘리고 학생과 여성 소비자를 위한 슬림한 타입의 마하펜도 올해 중으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충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05호(09.05.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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