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학계 “온난화 막으려는 평형장치 작동”
2010년 01월 07일
온난화를 막기 위한 지구의 몸부림이 시작됐다.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으로 보자면 아픈 지구가 면역체계를 발동한 셈이다. 국내 상당수 기후학자들은 “최근 한반도, 중국, 유럽을 강타한 폭설과 한파는 지구가 일시적으로 온도를 낮추기 위해 일으킨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증거가 아니라 온난화를 막기 위한 지구의 평형유지 장치라는 것이다.
4일 폭설과 함께 한반도에 찾아온 한파는 북극지방의 찬 공기가 남쪽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겨울철 북반구의 찬 공기(시베리아기단)는 대개 시베리아 지역에 머물며 흔히 알려진 삼한사온의 주기로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는데 올해는 한반도까지 뒤덮었다.
시베리아기단이 이렇게 맹위를 떨치는 이유는 눈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시베리아대륙을 포함해 몽골 서쪽의 파미르 고원부터 중국 헤이룽장 성에 이르는 북아시아에는 때 이른 폭설이 내렸다.
눈은 온난화를 막는 지구의 평형유지 장치 중 하나다. 지표면이 눈에 덮이면 흰색이 많아져 햇빛을 반사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결국 대지가 흡수하는 태양에너지가 줄어 낮에도 지표 근처의 공기가 더워지지 않는다. 정준석 기상청 기후예측과장은 “반사율이 높아지면 겨울철 기온이 빨리 떨어진다”며 “몽골에서 만주에 이르는 지역의 기온은 평년에 비해 9도 정도 낮다”고 말했다.
북아시아의 폭설은 온난화가 없다면 일어나기 힘들다. 북아시아는 바다에서 멀어 눈으로 변하는 수증기가 많이 유입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온도가 올라가면서 북아시아에 대량의 수증기가 유입돼 폭설로 변했다는 것이다.
국립기상연구소 권원태 기후연구과장은 “아직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인도양의 수증기를 머금은 더운 공기가 시베리아에서 폭설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고 그로 인해 시베리아기단이 확장되면서 한국도 한파와 폭설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폭설은 일시적인 온난화 방지책이다. 기후학자들에 따르면 온난화가 지속될 경우 지구 전체에 걸친 대규모 방지책이 가동될 수 있다. 바로 백두산 부근인 북위 40도 북쪽 지역이 빙하로 덮이는 빙하기가 발동되는 것이다. 빙하기라고 해서 지구 전체가 얼어붙는 것은 아니다. 적도 부근은 지금보다 더 뜨거워진다. 다만 여름철에도 극지방이 겨울 기온으로 유지돼 빙하 지역이 늘어나고 지구 전체의 평균온도가 내려가게 된다.
안순일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빙하기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바다의 순환이 멈추면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평상시에는 적도 지역에서 뜨거워진 바닷물은 극지방으로 이동한다. 극지방에 도착하면 소금기(염분)를 제외한 물의 일부가 얼며 밀도가 높아진다. 무겁고 차가운 물은 해저로 가라앉아 다시 적도로 이동한다.
그런데 극지방의 온도가 올라가면 빙하가 녹아 염분이 거의 없는 담수가 바다로 유입된다. 그러면 위쪽 바닷물의 밀도가 낮아져 가라앉지 않는다. 결국 바다의 순환이 멈추며 극지방으로 유입되는 열이 차단된다. 그래서 고위도 지방에 빙하기가 찾아온다.
문제는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난 지구온난화와 달리 해수 순환이 멈추는 현상은 갑자기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양동윤 지표환경변화연구실장은 “1만1500년 전부터 2000년 정도 지속된 작은 빙하기는 북대서양 해수의 순환이 정지된 지 1~3년 만에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다행히 중위도 지역인 한반도가 얼어붙을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온도차가 심한 극지방과 적도 사이에 일어나는 대규모 에너지 흐름의 여파는 받아야 한다. 바로 홍수, 태풍, 폭설, 가뭄 같은 기상이변이다.
양 실장은 “수증기를 가득 머금은 적도의 따뜻한 공기가 극지방의 찬 공기와 만나 한반도에 폭설을 쏟아 붓는다면 4일의 폭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이아 이론: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 박사가 주장한 이론으로 지구를 생물, 대기, 대륙, 바다로 이뤄진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봤다. 가이아라는 명칭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이름을 빌렸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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