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4일 목요일

‘박제가 되지 않은’천재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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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되지 않은'천재를 아십니까?
  10ㆍ11월 잇따라 한국무대 서는 사라 장ㆍ장한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바이올리니스트

프로스트ㆍ쇼펜하우어 즐겨 읽는 첼리스트…

천재 징크스 깨고 젊은 거장 반열에

1990년대 초중반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천재 신드롬'을 몰고 왔던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28)과 첼리스트 장한나(26)가 10월과 11월 잇따라 국내 무대에 선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얼굴로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천재소녀들은 어느덧 20대 후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젊은 거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원숙미를 드러내며 자신의 입지를 굳혀가는 두 사람. 이들의 행로를 따라가 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비슷하면서 다른 걸음 두 살 차인 사라 장과 장한나는 독일의 안네 소피 무터, 일본의 미도리 등에 비견되며 10대 이전에 이미 '천재 소녀'라 불렸다.

하지만 악기가 달라 두 사람이 나란히 비교된 적은 별로 없다.

둘 다 일찌감치 천재성을 인정받으며 세계적인 무대에 섰고, 미국 뉴욕에서 공부하며 그곳을 주 무대로 경력을 쌓아 갔지만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면 비슷한 점만큼이나 다른 점이 많다.

사라 장은 1980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와 작곡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3세 때 피아노를 배웠고, 4세 때 바이올린을 손에 잡았다.

사라 장은 누군가의 표현처럼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탁월한 천재였다.

바이올린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필라델피아 지역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8세 때 마에스트로 주빈 메타와 리카르도 무티에게 발탁돼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각각 연주 및 레코딩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이듬해 링컨센터에서 열린 뉴욕필 신년음악회에서 공식 '데뷔'하면서 스타로 떠올랐다.

그 해에 사라 장은 자신보다 예닐곱 살 많은 언니오빠들과 함께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입학했고, 지도교수인 도로시 딜레이는 "사라 장처럼 놀라운 학생은 처음 본다"며 경이로움에 가까운 칭찬을 쏟아냈다.

또, 수많은 지휘자들이 "천재(Prodigy)"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협연을 요청했다.

사라 장이 10대 초반에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배경에는 명지휘자들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단 한 번도 콩쿠르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미처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러브콜을 받았다.

사라 장을 아끼는 이들은 이런 바쁜 스케줄을 우려하기도 했다.

1993년 10월 3일자 뉴욕타임스에는 천재 소녀 사라가 엄청난 연주 스케줄 때문에 지치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장문의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한편, 장한나는 1982년 대한민국 수원에서 태어났다.

작곡을 전공한 어머니 덕분에 어려서부터 클래식 음악을 접했고, 6세 때부터 국내 '토종'으로 첼로를 배웠다.

그러나 장한나의 음악성이 남다르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본 부모는 장한나가 11세가 될 무렵 미국으로 이주해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입학시켰다.

장한나는 사라 장과 달리 지휘자가 아닌 선배 연주자에 의해 발탁됐다.

1994년 현역 거장 첼리스트의 이름을 딴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 출전해 쟁쟁한 성인 연주자를 물리치고 최연소 우승하며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 했고, 로스트로포비치는 장한나를 손녀처럼 아끼며 데뷔를 주선했다.

심사위원들은 "어린 소녀가 어떻게 인생의 온갖 고통과 슬픔을 음악에 표현해낼 수 있는지 놀랍다"며 충격 받았다.

콩쿠르 이전부터 이미 장한나의 천재성을 발견한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도 대가 없이 장한나의 후견인을 자처했다.

하지만 장한나는 사라 장과 조금 다른 길을 택했다.

어린 나이에 천재로 주목받은 연주자들이 중압감에 못 이겨 좌절하는 광경을 흔히 접한 스승들이 그에게 지나치게 과한 연주 일정을 잡지 말고 음악 외에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것을 권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장한나는 사라 장처럼 어린 나이에 대단한 연주 경력을 쌓지는 못했지만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고 지적인 연주자로 성장했다.

다른 연주자들처럼 음악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하버드대 철학과에 진학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짬이 나면 프로스트와 쇼펜하우어를 즐겨 읽는다는 장한나는 음악 안팎으로 관심 분야가 다양하다.

지난해부터는 지휘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바로크 음악을 탐구하고 있다.

수년 전, 일면식도 없던 가야금 명인 황병기를 찾아가 가야금을 배운 일화는 유명하다.

▶천재 징크스 극복, 성숙한 연주자로 일찌감치 전문 연주자로서 활동한 사라 장은 자의반 타의반 음악 외의 삶을 포기한 채 빡빡하게 살아왔다.

오죽하면 17세 때 연주 여행에 지쳐 매니저에게 당분간 쉬고 싶다고 하자, "앞으로 3년간의 스케줄이 꽉 짜여져 있기 때문에 3년 뒤에 쉬라"는 답을 들어야 했을 정도다.

어릴 때부터 삶의 대부분을 음악으로 채워서인지, 화려한 외모와 달리 일상에서는 모범생 타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자기 관리 능력이 뛰어나 한때 반짝하다가 조용히 퇴장한 일본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와 달리 꾸준히 명성을 유지했다.

사라 장은 열정적인 보잉과 다소 과격한 무대 매너로 유명한데, 발을 구르거나 무대 위를 걸어다니며 한쪽 발을 앞으로 차는 제스처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엇갈린다.

젊은 시절에는 파가니니, 차이코프스키, 시벨리우스 등 기교적이고 감성적인 작품을 주로 연주하고, 나이가 들면 차분하고 평화로운 브람스에 집중하고 싶다는 게 그의 음악적인 계획이다.

선배 첼리스트들의 보호 아래 성장한 장한나는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취하며 탐험가 기질을 키웠다.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장한나의 특징이다.

사라 장은 한국어에 서툴지만 장한나는 어린 나이에 유학을 떠났음에도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문장력과 언변이 뛰어나서,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하고 음악회에서 직접 작품 해설을 맡기도 한다.

장한나는 이제 겨우 26세지만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매우 성숙하고, 미래에 대한 꿈도 남다르다.

그가 밝힌 꿈은 로스트로포비치, 미샤 마이스키 등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대가 없이 받은 사랑을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것. 자신이 지휘봉을 잡은 것도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작은 첼로를 벗어나 가장 큰 악기이자 모든 악기의 결합체인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성남국제청소년관현악페스티벌에서 지휘자로 데뷔한 뒤 올해부터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를 계획하고 있다.

▶그들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먼저 내한하는 것은 사라 장이다.

7세 때 뉴욕필하모닉과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한 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및 지휘자들과 호흡을 맞춰온 그는 이번에도 쟁쟁한 오케스트라를 대동한다.

10월 18, 1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릴 내한 연주회에서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려줄 예정. 지난 17년간 LA필을 이끌다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LA필을 떠나는 핀란드 출신의 에사 페카 살로넨이 지휘를 맡는다.

따라서 한국 관객에게는 에사 페카 살로넨의 고별 무대로서의 의미도 있다.

장한나는 11월 7일과 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런던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비발디 첼로 협주곡을 연주한다.

런던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영국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실내악 단체로, 호기심 많은 장한나의 바로크 음악 도전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

김소민 기자(som@heraldm.com)



200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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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Anastácio Soberbo :

Hello, I like this blog.
Sorry not write more, but my English is not good.
A hug from Portug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