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8일 목요일

앵무새 같은 요즘 가수와 너무 달랐던 그녀

강태규 /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전문계간지'쿨투라'편집위원 www.writerkang.com

1996년 2월경이었다. 지금은 드라마 제작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작곡가 송병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당장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2시간안에 작사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이 무슨 날벼락. 왜 2시간 안에 작사를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2시간 뒤에 노래 녹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속으로, 그럼 너덧 시간의 여유가 있을거라 생각했다. 가수가 목 풀고 음악 듣고 멜로디를 익히는 시간까지 계산한 것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책상 위에 정말 방금 만든 악보가 올라와 있었다. 음악을 들려주며 곡 설명을 하는 송병준은 2시간 안에 반드시 끝내야 된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바로 녹음 들어간다는 말에 속으로 실실 웃었다. 그럴 리는 없을거라고.

어쨌든 '형님'의 강력한 요구에 머리를 모두 짜내 악보에 가사를 붙였다. 2시간 뒤 녹음실로 들어선 한 여자. 얼굴이 낯설다. 송병준은 격식을 갖추고 그녀를 반갑게 맞았다. 녹음실에 있다보면 유명 가수를 자주 만나게 마련. 도대체 누구길래 그러나 했다.

그녀는 녹음실에 들어서자마자 악보를 요구했다. 악보를 보더니 허밍을 시작했다. 그리고 반주 음악을 한번 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어, 이것 봐라. 그럼 음악을 아예 듣지도 않고 녹음실에 와서 처음 듣는단 말야?

반주음악을 다 듣고 난 그녀는 가사를 달라고 했다.  악보와 가사를 번갈아 보면서 반주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는 녹음실 부스로 총총 사라졌다. 이곳 녹음실로 온 지 20분만의 일이었다.

녹음실 부스로 들어간 그녀는 반주음악에 몇 차례 입을 맞추더니, '녹음합시다' 그런다. 이쯤되자, 녹음실에 있던 스태프들도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뿔사. 형님의 말이 맞구나. 진짜 가수네."  

그녀가 바로 '잃어버린 우산'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수 우순실이었다. 작곡자가 1차 가창을 한 데몬스트레이션 음반을 수차례 듣고 앵무새처럼 곡을 외워서 녹음하는 가수와는 차원이 다른 광경이 연출된 것이다. 녹음이 시작되고 우순실의 가창은 정교하게 뻗어나왔다. 작곡자 송병준은 첫곡에 OK 사인을 냈다. 듣고 있던 스태프들도 놀라운 건 마찬가지. 녹음 모니터를 들어본 우순실은  한번 더 가자는 것이었다. 두번째 녹음도 여전히 흔들림 없었다.

그리고 3월, 첫번째 녹음된 그 곡이 음반에 실렸다. 고소영, 이소라, 이민우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MBC 미니시리즈 '별' OST 음반 주제곡 '꿈꾸는 별'에는 우순실의 우수에 찬 목소리가 그렇게 녹아있다.

하기야 악보 볼 줄 몰라도 당당히 가수라 할 수 있다. 노래로 소름돋게 할 정도면 뭐라 하겠나. 그것도 아니면 정말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요즘의 가요계를 보면, 악보를 보며 곡을 해석할 수 있는 가수를 찾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우순실과의 녹음 과정을 추억하면서 그런 현실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Updated : 2009.06.1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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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choen.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12/20090612010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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