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은 식상하고, 뮤지컬이나 오페라는 너무 부담스러울 때 대안은 연극 공연이다. 오랜만에 연극 공연 소극장이 몰려 있는 대학로로 나섰지만, 수백 여개에 이르는 공연 포스터를 맞닥뜨리고 나면 눈 앞은 깜깜해진다. 이럴 때는 대충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뭔지도 모르는 작품을 덥썩 골라 소극장에 들어서거나, 소극장 골목을 헤매고 헤매다 공연 시작 시간인 8시를 넘겨 공연도 못 보고 그날 김이 새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입소문을 타고 있는 대학로 연극 '룸넘버 13'은 그런 고민을 덜어줄 만한 꽤 괜찮은 연극 중 하나다. 미국 연극을 각색한 이 작품은 첫 장면부터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한 템포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미스테리한 결말을 향해 질주한다. 미스테리한 사망 사건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지만 신기한 것은 쉼없이 관객들 사이에서 웃음 폭탄이 터진다는 데에 있다. 공연이 끝나면 극장을 나서며 "오늘 정말 원없이 웃었다"는 소리가 나오게 하는 연극이다. 웃음 폭탄을 터뜨리는 연극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 이 작품도 헛된 웃음만 선물하지 않는다. 웃음 뒤에는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연극을 보고 나서 '내가 알던 세상은 이 세상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깨달음도 생긴다. 여당 국회의원인 리차드는 국회에서 국정감사가 한창인데 야당 총재의 비서와 호텔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려는 찰나, 호텔 창문에 걸려 있는 시체를 발견한다. 리차드는 국정감사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정치 생명이 끝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며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온갖 편법을 총동원해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사건은 점점 더 리차드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 연극이 중반을 향해 치달을 때쯤 도대체 이 연극은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 궁금해질 정도로 끝 모를 미스테리는 계속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웃음보는 계속 터진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연극은 기막힌 반전으로 꽤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대로 해석된다. 때에 따라서는 전혀 진실과는 다른 사실이 사실로서 인지되기도 한다. 누가 바로 잡아주지 않는 한, 한 사건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교정되지 않은 채 사실로 굳어지기 일쑤다. 그리고 또 누가 바로잡아 주려한들 이미 바로잡기에는 왜곡된 사실들이 너무 많아 어느 것부터 바로 잡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순간이 도래한다. 그때 해결책은 무엇일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연극 '룸넘버 13'이 가르쳐 줄 것이다. 2008년 7월 3일 ~ 2008년 12월 31일. 대학로 세우아트센터. 평일 오후4시, 8시. 토, 일, 공휴일 오후3시, 6시. 월요일 공연 없음. 만 15세이상. 김수한 기자(soohan@heraldm.com)
2008.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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