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조선 기사전송 2009-04-20 11:01
한국 IT 진두지휘 라스베이거스 입성 구글·MS도 그녀 앞에 무릎 꿇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한국인이 ‘잭팟’을 터뜨렸다. 주인공은 재미동포 사업가인 쏘틸 황(52). 한국 기술로 만든 온라인 지도 오니온맵(Onionmap)이 그녀의 진두지휘하에 라스베이거스시 공식 온라인 지도로 최종 선정된 것. 구글·야후·MS·AOL 등 세계적 기업들을 제치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작은 벤처기업이 ‘큰 일’을 낸 것이다.
한국의 큐리오시티(Quriocity·대표 김영웅)가 국내 기술로 완성한 오니온맵은 3차원 지도로, 단순한 길 안내뿐 아니라 쇼핑·관광·호텔·식당예약·커뮤니티 활동이 가능하도록 만든 쌍방향 네트워크 세상이다. 오니온맵안에서 모든 서비스가 원스톱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통합 플랩폼으로 하나의 도시를 온라인에 그대로 옮겨놓은 셈이다. 오니온맵은 라스베이거스의 공식 온라인 지도가 됨으로써 연 4000억원의 수익 창출이 가능할 전망이다. 라스베이거스의 연 관광수입 4조원 중 오니온맵을 통한 각종 예약 수수료 등이 오니온맵 몫으로 할당되기 때문이다.
▲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이번 경쟁에서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한 무모한 도전은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어낸 것은 쏘틸 황의 ‘화려한 과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LA를 주름잡은 여성 사업가로 미국 주류사회에선 유명인사다. 라스베이거스시가 그녀의 사업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프레젠테이션 기회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사업차 한국을 찾은 쏘틸 황을 한남동에 있는 오니온맵 사무실에서 만났다. 약 100㎡(30여평)의 사무실에서 고작 10여명의 직원이 온라인상에서 세계적 대도시를 구축하고 있었다. 오니온맵에 한방 맞은 구글이나 MS의 대표가 이곳을 봤다면 기가 막힐 일이었다. 쏘틸 황은 큰 키에 시원한 외모만큼 에너지가 넘쳤고 거침이 없었다. 앉자마자 오니온맵에 대한 얘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해낸 일보다는 그녀 자체가 궁금했으나 ‘과거’를 물으려는 기자와 ‘현재’를 넘어 ‘미래’를 강조하는 그녀와는 자꾸 대화가 어긋났다.
“저, 오니온맵에 대해서는 충분히 됐고 개인적인 얘기가 듣고 싶은데요.”
“개인적인 얘기? 꼭 해야 하나요?”
“… ”
23살에 한국을 떠나 미국적 사고가 익숙한 그녀에게 일이 아닌 개인에 대한 호기심은 이해하기 힘들 수 있을 터였다. “젊었을 땐 너무 예뻐서 사람들이 비즈니스가 아니라 내 얼굴에 더 관심을 가질까봐 언론 인터뷰를 피했다”는 농담을 던지며 개인사를 털어놓기 꺼려하는 그녀에게 “이젠 그런 걱정 안 해도 되겠다”는 농담으로 맞받아치며 ‘옛날 이야기’를 재촉했다.
소녀, 세계를 품다
▲ 히스패닉계 신문 ‘EN FOQUE’발행인으로 미국 신문에 소개된 쏘틸 황.
의사였던 아버지는 돈보다 봉사에 관심이 많았다. 무의촌만 찾아 다니던 아버지가 용돈 대신 매달 그녀에게 준 것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였다. 그곳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었다. 왜 전쟁이 일어나는지, 다른 나라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그야말로 세상은 넓고 궁금한 것은 너무 많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영화를 공부해 보겠다고 편도 비행기 티켓 한 장 들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 당시만 해도 여자 혼자 외국을 나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순수예술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 적을 두고 다른 유학생들처럼 샌드위치 가게에서 양파를 까는 일부터 시작했다.
학비며 생활비가 엄청났다. 돈이 필요했다. 일단 미국이라는 곳을 제대로 보자는 생각에 그레이하운드에서 잠을 자며 꼬박 한 달 동안 50개 도시를 지그재그로 누비고 다녔다. 미국을 다 보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170㎝가 넘는 큰 키와 서구적인 외모, 넘치는 끼로 어디서건 튀어 보였던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선 그런 외모와 개성이 오히려 장점이 됐다. 일단 LA에서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사업가의 DNA
처음 시작은 쿠바인 파트너 2명과 함께 쿠바 난민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었다. 고향에 가족을 두고 온 그들은 쿠바로 돈이나 생필품을 보내고 싶어했고 그걸 눈여겨본 그녀의 전략은 적중했다. 사업은 대박이었다. 통장에 돈이 쌓였다. LA에서 600㎞ 떨어진 샌프란시스코의 학교까지 비행기를 타고 통학할 정도였다. 아예 전세비행기를 띄워 남미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사업을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으나 고비도 있었다. 미 정부로부터 쿠바 방문 불허 방침이 내려지면서 한때 부도위기까지 몰렸다.
“사업이 재미있었어요. 사업이냐 학업이냐 기로에서 결국 사업을 선택했어요. 지금 같았으면 둘 다 잘해 나갔을 텐데 그때만 해도 사고가 유연하지 못했죠. 나중에 후회를 많이 했어요.” 그녀 자신도 몰랐던 사업DNA를 발견하면서 그녀의 열정은 계속 새로운 사업으로 이어졌다.
LA엔 당시 히스패닉계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고 그들의 커뮤니티를 연결해 줄 신문이 필요했다. 스페인어 신문인 ‘엔 포케(EN FOQUE)’를 만들었다. 20대의 새파란 동양여자가 신문사 발행인이 되자 기존 신문사의 위협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히스패닉들의 의견을 정확하게 반영한 신문 만들기를 고수한 결과 그녀는 히스패닉 커뮤니티의 유명인이 되었다. 그때 얻은 이름이 쏘틸(Xochitl)이다. 쏘틸은 10~12세기 멕시코 고원지대를 지배한 톨텍(Toltec)족의 공주다. 아즈텍어로 꽃이라는 뜻. 그 시대에 자신이 원하는 삶을 개척하고 살았던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엔 포케’가 궤도에 오르자 다음엔 영어로 된 패션매거진 ‘MODA’를 발행했다. 기존의 패션잡지가 소비자들 대상이었던 반면 MODA는 업체 대상이었다. 그녀의 사업 감각은 남들보다 한 발씩 앞서가는 것이었다.
“난 메이드 인 코리아”
그녀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았다. 늘 새로움을 찾아나서고 도전을 즐겼다. “남들이 남자친구를 바꾸는 것처럼 난 사업을 바꿨죠. 연애 기간이 길면 사랑이 무뎌지듯 사업이 안정되면 다른 사업으로 눈이 돌아갔어요.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까지 첫 3년이 가장 긴장되고 짜릿하죠.”
새로운 ‘사랑’은 1996년에 다시 시작됐다. 글로벌 마케팅·컨설팅 회사인 URI(United Resources Information)를 만든 것. 아시아 기업들의 미국 진출을 도와주고 미국 기업의 아시아 진출을 위한 현지화 전략을 세워주는 일을 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이 한창일 때 한국 대기업 중 그녀를 거치지 않은 기업이 별로 없었다. 대기업 임원들 사이에서 그녀는 ‘미국 진출을 위한 패스포드’로 통했다.
URI를 만든 계기 중 하나는 한국에 대한 사랑이었다. 성공한 한인 사업가로 LA타임스와 인터뷰를 하다 기자로부터 한국인을 폄하하는 발언을 들은 게 계기였다. 그때까지 미국에서 한국 기업은 저가로 승부하는 동양의 기업에 불과했다. 그녀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두고볼 수 없었다.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을 진두지휘했던 그녀의 마케팅 방식은 마음을 공략하는 감성 마케팅이다. 한국 대기업과 해온 일 가운데 그녀가 손꼽는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미국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LA의 윌튼극장을 ‘윌튼LG’로 바꾼 것이다. 문화와 기업을 엮어 LG의 기업 이미지를 확 끌어올렸다. 또 애틀랜타 등 미국 공항의 안내 스크린을 독점하고 있던 소니를 몰아내고 LG 제품으로 바꾸는 일도 주도했다. 아테네올림픽 당시 유람선과 아테네시 전철의 한 노선을 아예 LG전자의 광고판으로 도배한 것도 그녀의 작품이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숨은 공신이었던 셈이다. 한국 기업뿐 아니라 코카콜라·닛산·도요타 등도 그녀의 손을 거쳐간 대표적 기업이다. 클린턴 선거 컨설팅을 한 인연으로 민주당에서 영입 제의를 받기도 했다. 이런 화려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인터뷰 도중 “옛날 자랑하면 뭐하냐”며 자꾸 말을 돌리려 해 몇 차례 입씨름이 필요했다.
다시 여행을 시작하다
복싱의 인파이터처럼 목표를 향해 달려드는 그녀지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도 많았다. “내 얘기를 하자면 너무 드라마틱해서 책 몇 권으로는 부족해요. 밤마다 울면서 버틴 적도 있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업가가 아닌 여자로 대하려고 하는 것도 큰 장애였어요.” 그녀는 “미팅에 들어가면 으레 당신의 보스는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내 얘기를 들으려면 인터뷰 자리가 아닌 술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아무 기반도 없었던 그녀가 가장 중요한 생존법으로 삼는 것은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지 않으면 승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1등 기업을 벤치마킹한다고 1등이 될 수는 없어요. 잘해도 2등 밖에는 안 되는 거죠. 1등을 하려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합니다.”
‘오니온맵’을 시작할 때도 사람들로부터 왜 구글·야후처럼 지도를 만들지 않느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때 그들을 따라했다면 ‘라스베이거스의 기적’은 없었을 것이다. 미국·유럽·중국 등을 오가며 사업을 하느라 지난 30년의 3분의 1을 비행기와 호텔에서 보냈다는 그녀의 여행은 지금부터 또 시작이다. ‘오니온맵’은 라스베이거스에 이어 미국 주요 도시들을 계속해서 공략해 나갈 계획이다. 조만간 뉴욕의 공항과 버스·공공병원 등을 오니온맵으로 구성하는 협의에 들어간다. 텍사스주의 알링턴과 댈러스시에서도 긍정적 답변을 받아놓은 상태다. 연애하듯 일을 즐긴다는 쏘틸 황. 오니온맵 안에 또 하나의 지구촌을 만들어 넣겠다는 그녀는 또다시 새로운 사랑에 푹 빠져있었다.
오니온맵(onionmap)
▲ ‘오니온맵’의 라스베이거스 지도.
오니온맵(www.onion.net)은 순수 한국기술로 만든 새로운 3차원 도시지도다. 개발자는 벤처기업인 큐리오시티(Quriocity) 김영웅(40) 대표. 쏘틸 황이 오니온맵에 뛰어든 건 2006년이다. 쏘틸 황은 처음엔 인큐베이팅에만 참여하려고 했으나 김 대표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까지 하게 됐다.
오니온맵이 라스베이거스 공식 지도로 선정되기까지는 2년여의 기간이 걸렸다. 오픈 경쟁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숱한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구글·MS·야후 등 세계적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긴 것은 오니온맵이 공간분석이나 비주얼 면에서 훨씬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구글이 키워드 중심이고 야후가 카테고리 중심이라면, 오니온맵은 비주얼을 중심으로 한 쌍방향 검색이라는 점이 다르다.
무엇보다 그림을 보고 지도를 검색하기 때문에 언어에 상관없이 찾기가 쉽다.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 시티 맵으로 공식 선정된 후 기본 도시 틀 위에 라스베이거스시의 요구에 맞춰 콘텐츠 구성을 하고 기능을 붙이는 중이다. 10월부터 라스베이거스 공식 사이트를 통해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한다. 현재 오니온맵에는 미국의 33개 주요도시가 구축돼 있는데 이를 더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오니온맵은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도 구상하고 있다. 오니온맵 내에 아메리카타운·코리아타운 등을 만들어 비즈니스 활동 공간을 만들어 준다는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콘텐츠와 시너지를 극대화 할 수 있는 파트너들이 필요하다. 미국 시장에 동반 진출할 파트너와 관련해서는 이미 미국 상공회의소의 도움을 받아 몇몇 기업들과 이야기를 진행 중이다. 한국 시장에서도 오니온맵에 들어갈 콘텐츠와 파트너들을 본격적으로 찾아 나설 계획이다.
/ 황은순 차장대우 hwang@chosun.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