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5일 수요일

[일반] 어둠의 불법복제 커넥션, `씬`을 파헤친다 -1-

[일반] 어둠의 불법복제 커넥션, `씬`을 파헤친다

어떤 불법복제 게임이 발매일 전에 우리 손에 들어오기 까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불법복제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법복제가 얼마나 무서운가 하면, 최근에 들어서는 어떤 게임의 발매일 이전에 그 게임이 불법복제 된 파일이 올라오는 경우도 흔해졌을 정도입니다. 물론 발매 이후에 불법복제 되는 것도 문제지만, 발매일 이전에 불법복제 되는 것은 더 큰 피해를 입힙니다. ‘우리가 돈을 내고 정당하게 샀는데, 더 늦게 플레이 한다’라는 정품 유저들의 불만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니까요.

▲ 뭐 이제는 발매 당일날 뜨는 건 기본이죠 기본...

이 이야기는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를 기반으로 A라는 게임이 발매일 전에 우리 손에 불법복제 된 시디 이미지로 들어오기까지의 여정을 가상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용어를 잘 모른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기사를 끝까지 읽으면 어떤 구조인지 전부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10월 1일 오후 5시: 게임회사

3년의 개발 기간과 100억원에 가까운 개발 비용을 들여 노력했던 게임, PC용 게임 A가 오랜 고통의 시간 끝에 마침내 완성됩니다. 개발사 직원들은 기뻐하며 전 세계적으로 수 십 만장이 팔려나갈 A의 모습을 상상하며 완성 축하 파티를 벌입니다. 혼신의 역작 A를 위해 유통사와 이미 모든 협의를 마쳐놓은 상태이며, 패키지 A의 최종 출시일은 11월 1일입니다.

10월 7일 오전 10시: 프레스시디 제작사

제작사와 유통사가 게임 A에 대한 약간의 최종 테스트를 끝내고, A의 마스터 시디(골드 시디)를 프레스시디 제작사로 보냅니다. 유통사는 A 게임의 초기 출하량을 5만장으로 잡고 있으므로, 프레스시디 제작사에 계약금과 함께 시디 프레싱과 패키징을 요구합니다. 프레스시디 제작사에서 패키지 완제품까지 제작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10월 12일 오후 1시: 프레스시디 제작사

한 창 패키지 제작으로 바쁜 와중에 직원 한 명이 개인 신변상의 이유로 회사를 그만둡니다. 당장 일손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므로 회사는 채용공고를 내고 B를 임시직으로 채용합니다. B는 회사에 도착하자 마자 간단한 설명을 듣고 다음날부터 바로 현장으로 투입됩니다.

10월 15일 오후 8시: 프레스시디 제작사 창고

임시직인 B가 패키지가 잔뜩 쌓여 있는 창고에 나타났습니다. 사실 B는 유명 와레즈 그룹인 ‘복돌이X’의 공급책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프레스시디 제작사에 임시직으로 채용된 것입니다. B는 게임 패키지 A가 대작임을 직감하고 상자에서 패키지 한 개를 꺼내 몰래 빼돌린 뒤 유유히 퇴근합니다. 그리 큰 회사가 아닌 만큼, X-Ray 검사 같은 것은 애초에 있지도 않습니다.

10월 15일 오후 11시: B의 집

B는 집에 도착하자 마자 인터넷 대화 서비스(IRC)에 접속해 ‘복돌이X’의 리더인 Y와 연락합니다. Y는 ‘복돌이X’의 멤버를 인터넷 상으로 호출해 세계 최초로 게임 ‘A’를 릴리즈 할 것이라는 것을 알리고 협조를 구합니다. 패키지 안에 들어있는 게임A는 ‘클론시디’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시디 이미지 형태로 복제된 뒤, ‘복돌이X’의 전속 크래커에게 인터넷을 통해 전달됩니다. 이 크래커는 낮에는 IT회사에서 일하지만, 밤에는 ‘복돌이X’의 유능한 크래커로 일하는 이중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0월 18일 오전 1시: IRC 복돌이X 채널

A에 걸려 있던 락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꽤 걸렸지만, 결국 이틀 만에 크래커의 손을 통해 해체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배포뿐 입니다. ‘복돌이X’의 취급책과 배송책은 전 세계에 불법복제 된 A를 뿌릴 준비가 끝났습니다. ‘복돌이X’의 이름을 어둠의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입니다! 물론 A를 개발한 X사가 앞으로 겪을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10월 18일 정오

‘복돌이X’의 A게임 릴리즈에 약간 문제가 있어서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어쨌든 ‘복돌이X’는 A게임을 릴리즈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인터넷에 파일을 일단 풀면, 그 파일은 FTP와 P2P등의 경로를 통해 알아서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이제 ‘복돌이X’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각종 릴리즈 정보 사이트에는 복돌이X가 A게임을 릴리즈 했다는 정보가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10월 19일 정오

릴리즈 후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A게임은 무려 발매일 10일 전에 시디 이미지가 전 세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됩니다. 각종 웹 하드 사이트에는 남의 저작물을 팔아 ‘코인’을 벌어보려는 거지들과 공짜로 게임을 즐기기 위해 눈이 벌개진 복돌이들로 넘쳐납니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게임회사와 유통사는 망연자실합니다. A의 시디 이미지가 인터넷에 퍼져 나가는 속도로 봐선 이제 10만장은 고사하고 5만장도 힘들어 보입니다. 정품을 예약한 게이머들은 어떻게 하면 정품이 나오기 10일 전에 불법복제 소프트웨어가 인터넷에 뜨는 거냐고 울분을 터트립니다.

물론 A게임을 다운 받은 복돌이들은 제작사야 어찌 됐든 상관 않고 릴리즈 그룹 덕분에 불법복제 된 게임을 그저 즐길 뿐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출시 게임수가 줄어 결국에는 즐길 게임 자체가 없어진다는 것은 생각도 않은 채 말입니다.

예제에서도 나왔지만 불법복제를 막기 위해 오늘도 헛된(!) 노력을 계속하는 게임 업체의 반대편에는, 우리에게는 흔히‘와레즈’로 알려져 있는 불법복제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해외에서 ‘씬(The Scen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불법복제 커뮤니티는 그 옛날 자기 테이프가 사용되던 시절부터 블루레이가 등장한 지금까지,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언제나 불법복제 소프트웨어를 보급(?)하기 위해 자발적이며 조직적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그까짓 복돌이들이 뭘…’이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지만, ‘씬’은 보기보다 훨씬 더 조직화되고 분업화된 하나의 ‘세계’입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현실에 있는 어둠의 세계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불법복제 형태인 웹 하드 업로더는, 엄밀히 말해 ‘씬’이 내놓는 결과물을 받아먹기나 하는 최하위 계층에 불과합니다. 범죄 조직으로 따지자면 언제 총맞을지 모르는 더럽고 위험한 거리에서 마약을 파는 최하위 조직원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불법복제 제국, ‘씬’은 과연 어떠한 구조로 되어 있기에 이렇게 빨리 불법복제물을 퍼트릴 수 있는 것일까요? 왜 불법복제를 막으려는 법적인 시도가 쉽게 성공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해가 지지 않는 불법복제의 제국, ‘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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