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5일 수요일

[일반] 어둠의 불법복제 커넥션, `씬`을 파헤친다 -3-

[일반] 어둠의 불법복제 커넥션, `씬`을 파헤친다

불법복제 제국에도 법이 있다(Scene Rules)

현실의 법을 어기면서 불법복제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릴리즈 그룹과 ‘씬’에도 엄연한 법률이 존재합니다. 어떤 릴리즈 그룹을 누가 세우든 성립은 자유이지만, 그 활동은 미리 정해져 있는 룰을 철저히 따라야 합니다. 범죄 세계에도 범죄 조직 간의 암묵적인 룰(ex: 어린애는 건드리지 않는다)이 있듯이, 릴리즈 그룹도 ‘씬’에서 활동하고 싶다면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이것을 ‘씬의 규칙(Scene Rules)’이라고 지칭합니다.

이 룰은 ‘씬’에 변화를 가져올 중요한 사항(CD-ROM 매체의 도입 등)이 있을 때 마다, 여러 릴리즈 그룹의 협의를 거친 후 ‘씬’에 관련된 사이트에 전문이 게재되는 형식으로 공포됩니다. 현실에서 범죄조직의 수장끼리 만나 암묵적으로 규칙을 협의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입니다. 이 ‘법’에는 릴리즈를 할 때 지켜야 할 기술적 사항(파일명, 압축의 종류와 분할 압축의 크기), 올바른 릴리즈 방법, 릴리즈 그룹 간의 분쟁 시 중재 규칙이 담겨있습니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씬’에도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것이 존재하는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씬의 규칙’은 현실의 법보다 더 엄격히 적용됩니다. 때때로 릴리즈 그룹이 실수든 고의든 규칙을 위반할 때가 있는데, 이 잘못의 정도에 따라 씬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으며(Banned from the Scene) 한 번 추방당한 그룹은 추방이 풀릴 때까지 ‘씬’ 커뮤니티에서 인정받지 못합니다. 현실에서 가장 유사한 개념이 있다면, 중세 유럽의 ‘파문’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불법복제 제국의 고속도로: FTP/FXP와 P2P

릴리즈 된 ‘제품’을 전 세계로 퍼트리기 위해서는 공급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공급선으로 가장 애용되는 것이 FTP/FXP와 P2P입니다. 사실 초기 릴리즈 그룹이 자신의 결과물(?)을 대규모로 뿌리는 일은 드뭅니다. 자칫하면 추적에 걸려 FBI와 함께 즐거운 연방감옥 생활을 할 수도 있고, 만일 뿌린 결과물이 잘못되었다면 그 책임을 릴리즈 그룹에서 져야 하니까요. 그래서 릴리즈 그룹은 제한된 이용자만 사용할 수 있는 FTP를 이용해 자신들의 성과물을 퍼트립니다.

▲ 체포시에는 연방감옥에서 따뜻한 대접을 받는다

릴리즈 그룹이 운영하는 초기 FTP는 극히 제한된 사용자만이 이용할 수 있고, 이 FTP의 계정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합니다. 후원금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군요. 어쨌든, FTP에 일단 파일이 올라오면 급속도로 퍼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용하는 방식이 바로 FXP입니다. FXP는 두 원격 ftp간에 파일을 서로 전송할 수 있는 기능인데, 이 기능을 이용하면 폐쇄적이고 소규모인 ftp에서 대규모의 회선이 물려 있는 ftp로 파일을 옮겨 빠르게 배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배송책에 의해 릴리즈 그룹의 ftp에 파일이 풀리고, 이 파일이 다시 다른 ftp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더라도 복돌이들의 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직 몇 단계가 더 필요합니다. 보통 릴리즈 그룹의 릴 자료를 가장 먼저 입수하는 사람들은, 그 옛날 BBS시절처럼 제한된 사람에게만 유료로 ftp를 제공하는 것이 보통이니까요. 남의 저작물로 돈을 벌어 먹는 방법이 웹 스토리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 최근 불법복제의 대세가 되어버린 `토렌트`

그래서 최근에는 ‘토렌트’등의 P2P를 통한 릴리즈 파일 배포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익명으로 업하고 익명으로 다운받을 수 있는 만큼, 추적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고 다수가 전송하는 만큼 그 속도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몇 단계를 더 거쳐야 최종 복돌이(?)의 손에 파일이 들어오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 누구나 ‘토렌트’하나면 방금 막 릴리즈 된 따끈 따끈한 자료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매커니즘으로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불법복제 된 게임이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때쯤 되어서야 웹 스토리지에 올려서 코인을 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와레즈에 자신의 자료를 최신 자료라고 소개하게 됩니다. 이제 서문에서 ‘최하층 조직원’이라고 한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전설적인 릴리즈 그룹들

불법복제 제국, ‘씬’에서 오래 활동했던 전설적인 릴리즈 그룹을 몇 개 소개합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릴리즈 그룹은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그룹입니다. 여담이지만, 이들 그룹의 주요 멤버는 대부분 FBI의 추적 끝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콩밥을 먹습니다. 결국 정의는 승리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Razor1911(약자: RZR)

1991년 결성된 릴리즈 그룹인, Razor1911의 이름은 맥주의 상표명에서 온 이름입니다. 결성 이후 무려 17년 동안 활동 중인 가장 유명하고 오래 된 릴리즈 그룹이기도 합니다. 2001년 대규모의 단속으로 주요 멤버들이 체포되어 콩밥을 먹기도 했지만, 2004-2006간의 짧은 공백기를 제외하고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는 릴리즈 그룹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스타크래프트’ 립 버전으로 알려져 있는 그룹입니다.

Fairlight(약자: FLT)

Fairlight 역시 1991년 결성된 릴리즈 그룹으로, 오랜 기간 동안 현역으로 활동 했던 릴리즈 그룹입니다. Razor1911과 굵직 굵직한 게임의 릴리즈를 놓고 경쟁을 하기도 했던 Fairlight는 2004년 인터폴의 불법복제 수사로 주요 멤버가 체포되어 활동을 중단합니다. 이후 2006년에 잠깐 활동을 재개하기도 하였지만, 2007년 4월 Fairlight 20주년을 끝으로 현재까지 활동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Deviance(약자: DEVIANCE)

Deviance는 릴리즈 그룹이 해체되고 재편하는 시기에 탄생한 릴리즈 그룹입니다. 그룹 자체는1999년부터 활동을 개시했지만, 멤버 대부분은 다른 릴리즈 그룹에서 일하던 노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시티4’, ‘콜 오브 듀티’ 등의 릴리즈로 국내에 알려져 있는 그룹이기도 합니다. 데비앙스 그룹은 2007년 1월을 끝으로 해체되었습니다.

Reloaded(약자: RLD)

2004년에 결성된 신생 릴리즈 그룹으로, 앞에서 소개했던 데비앙스의 멤버들이 모여 만든릴리즈 그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릴리즈 그룹 중 하나입니다. 2007년 말, 다른 릴리즈 그룹과의 분쟁을 ‘씬’ 커뮤니티에서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도 ‘폴아웃3’등의 대작을 릴리즈 해, 국내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릴리즈 그룹입니다.

맺으며: 절대로 끝나지 않는 전쟁, 불법복제

시대를 불문하고 게임 업계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는 역시 불법복제 입니다. 불법복제로 인해 게임업계가 입는 피해만 해도 연간 수천만에서 수 억 달러에 이르며, 불법복제를 막기 위해 유통사가 디지털 권리 보호 장치(락)에 별도로 들이는 비용 역시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알고 있듯이 불법복제는 전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게임을 상용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이래 불법복제를 막기 위해 아이스크림보다도 많은 수의 방법이 도입되었지만, 어느 하나 특별히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 강력한 락이 출현하면서 불법복제 역시 사그라 들 것 같아 보였지만, 오히려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불법복제를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항하기 위해 강력한 락을 도입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 락이 오히려 정품 게이머들을 더 불편하게 만들어 구매욕구를 떨어뜨리는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 이 분도 이 분이지만, `레드얼럿3`의 락도 짜증나긴 마찬가지다

불법복제는 강력한 락과 인터넷 인증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그 기세가 꺾이지 않았습니다. 초고속 으로 파일을 교환 가능한 인터넷망이 전 세계에 보급되면서, 현재 불법복제는 그 제국의 규모를 점차 확대해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 불법복제 제국, ‘씬’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애초에 ‘씬’ 자체가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번에 걸친 대규모의 체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릴리즈 그룹은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 아무리 불법방지 장치를 도입해도, 그걸 깨려고 기계까지 수술하는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제 그 어떤 락이 개발된다고 하여도, 얼마나 많은 릴리즈 그룹이 체포되든 간에 수요가 있는 한 불법복제를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공짜로 소프트웨어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릴리즈 그룹을 만들어 내고 ‘씬’을 확대시켜 나갈테니까요.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해가 지지 않는 불법복제의 제국 ‘씬’은 영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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